[심층 리포트] 정지된 원전도 전기가 필요하다 — 자포리자 원전 외부전원 상실의 기록

원자로 6기가 모두 멈춘 자포리자 원전이 2026년 8월 20일 이후 18일 동안 디젤발전기로 버텼습니다. 왜 정지된 원전에 전기가 필요한지, 전쟁 전 10개이던 송전선이 어떻게 1개가 됐는지, 26차례의 외부전원 상실 기록과 한국 원전의 대비를 공개 자료로 정리합니다.

수치 기준일 2026년 9월 13일 — 이 글의 통계·가격·일정·규제 현황은 이 날짜에 확인한 값입니다. 본문에 따로 적힌 기준일이 있으면 그 날짜가 우선합니다.

2026년 8월 20일, 우크라이나 남부 드니프로강 왼쪽 기슭. 자포리자 원전에 남아 있던 단 하나의 송전선, 330kV 페로스플라우나-1 회선이 강 건너편의 군사 활동 뒤 끊겼습니다. 발전소의 비상디젤발전기(외부전원이 끊기면 자동으로 켜지는 발전소 자체 발전기)가 자동으로 기동했고, 그날부터 18일 동안 원자로 6기와 사용후연료 저장조를 식히는 펌프는 전력망이 아니라 경유로 돌아갔습니다.

9일 뒤인 8월 29일, IAEA 사무총장 라파엘 그로시는 “외부전원이 복구되거나 경유가 추가로 들어오지 않으면 열흘 안팎이면 발전소 전체가 전원을 잃을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9월 5일 IAEA가 중재한 국지 휴전이 발효돼 우크라이나 기술진이 지뢰 제거 뒤 수리에 들어갔고, 9월 7일 19시 2분 회선이 다시 연결돼 18일 만에 외부전원이 돌아왔습니다(에네르고아톰 발표, IAEA 확인). 비상디젤발전기는 대기 상태로 돌아갔습니다. 이 글은 이 사건을 기록으로 남기되, 러시아·우크라이나 양측의 주장과 IAEA가 직접 확인한 사실을 구분해 적습니다.

한눈에 보기

  • 자포리자 원전 6기는 2024년 4월부터 모두 냉온정지 상태이지만, 붕괴열 제거·저장조 냉각·계측을 위해 지금도 외부 전기가 필요하다.
  • 전쟁 전 10개(750kV 4개·330kV 6개)이던 외부 송전선은 2026년 3월 24일 이후 1개만 남았고, 8월 20일 그마저 끊겨 IAEA 집계 26번째 완전 상실이 18일간 이어졌고, 9월 7일 회선이 복구됐다(2026년 9월 13일 기준).
  • 마지막 방어선은 비상디젤발전기(약 20대)와 규정상 최소 열흘치 경유, 카호우카 댐 붕괴 뒤 판 지하수 우물 11개, 그리고 드론 공격 아래에서 출퇴근하는 직원들이다.

1. 정지된 원자로가 왜 전기가 필요한가

원자로를 멈추면 핵분열은 몇 초 만에 끝나지만, 연료 속에 쌓인 핵분열생성물이 붕괴하며 내는 열은 바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것을 붕괴열이라고 합니다. 세계원자력협회(WNA)의 후쿠시마 사고 정리에 따르면 정지 1시간 뒤에도 원자로는 정격 열출력의 약 1.5%를 내고 있었고, 후쿠시마 1호기의 경우 그 값이 약 22MW였습니다.

붕괴열은 시간이 갈수록 줄어 몇 년이 지나면 정지 직후의 수백분의 일이 되지만 0이 되지는 않으므로, 물로 계속 식혀야 하고 물을 돌리는 펌프에는 전기가 필요합니다. 자포리자처럼 냉온정지(원자로를 멈추고 냉각수 온도를 끓는점 아래로 낮춰 압력이 걸리지 않게 유지하는 상태)로 수년이 지난 원자로는 열 부담이 크게 줄어 있습니다. 그래서 디젤발전기 몇 대만 돌려도 냉각이 유지되고 경유도 그만큼 천천히 줄지만, 전기가 필요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전기가 필요한 곳은 냉각펌프만이 아닙니다.

  • 사용후연료 저장조 — 원자로에서 꺼낸 연료가 물속에 잠겨 있는 수조로, 수온을 유지하는 순환·냉각 계통이 전기로 돕니다. 후쿠시마 4호기 저장조에는 정비 중이던 노심 전체 연료 548다발이 들어 있어 사고 당시 가장 큰 걱정거리였습니다. 저장조의 연료가 나중에 어떻게 처리되는지는 핵폐기물 부피 글에 있습니다.
  • 계측·제어와 통신 — 온도·압력·수위·방사선량을 읽는 계기와 제어실의 표시장치, 외부와의 통신이 전기로 돕니다. 계기가 꺼지면 운전원은 눈을 감고 일하는 셈이 됩니다.
  • 환기·방사선 감시 — 건물 내부 압력을 유지하는 환기 계통과 부지 안팎의 방사선 감시망도 전원이 필요합니다.

2011년 후쿠시마가 남긴 교훈은 정확히 이 지점에 있습니다. 2011년 3월 11일 지진으로 외부전원 6회선이 모두 끊겼고, 41분 뒤 약 15m의 쓰나미가 비상디젤발전기 13대 중 12대를 침수시켰습니다. 살아남은 것은 6호기의 높은 곳에 있던 공랭식 발전기 1대뿐이었습니다.

운전 중이던 1~3호기는 교류전원을 모두 잃은 ‘소내정전(SBO)’ 상태에서 노심이 녹았습니다. 원자로 자체는 지진 직후 정상적으로 정지했지만, 정지 뒤의 냉각을 이어 갈 전기가 없었던 것이 사고의 핵심이었습니다. 방류 문제로 이어진 그 뒤의 이야기는 후쿠시마 오염수 3년 글에 정리했습니다.

2. 자포리자의 전력 공급 구조

자포리자 원전은 원자로 6기(각 1,000MW급)를 가진 유럽 최대 원전으로, 2022년 3월 4일 러시아군에 점령됐고 2022년 9월 이후 전기를 생산하지 않고 있습니다. IAEA에 따르면 전쟁 전에는 외부 송전선 10개(750kV(킬로볼트, 초고압 송전 전압) 4개, 330kV 6개)가 있었습니다. 2026년 9월 13일 기준 상태는 아래와 같습니다.

회선전압상태기준일
드니프로우스카750kV(주 회선)3월 24일 단선. 6월 IAEA 중재 휴전 아래 발전소 쪽 수리는 마쳤으나 약 100km 떨어진 변전소 손상(5월)으로 전기를 보낼 수 없음2026.7.2 IAEA
페로스플라우나-1330kV(예비, 인근 화력발전소 개폐소 경유)8월 20일 단선. 9월 5일 7번째 국지 휴전 아래 수리, 9월 7일 19:02 재연결(에네르고아톰 발표, IAEA 확인)2026.9.8 IAEA
나머지 8개 회선750kV 3개·330kV 5개2022년 점령 초기부터 순차적으로 손상·단선, 복구되지 않음IAEA

두 회선의 성격이 다릅니다. 750kV 드니프로우스카 회선은 원전을 우크라이나 국가 전력망에 잇는 주 회선이고, 330kV 페로스플라우나-1 회선은 원래 인근 자포리자 화력발전소를 거치는 예비 회선입니다. 회선 하나에만 기대는 기간이 2025년 5월 7일 이후(750kV 주 회선만, 9월 23일 그마저 끊겨 30일 정전)와 2026년 3월 24일 이후(330kV 예비 회선만, 5개월 이상)로 길어지면서, 뇌우나 개폐소(송전선을 잇고 끊는 설비) 손상 같은 작은 사건에도 발전소 전체가 외부전원을 잃는 구조가 됐습니다.

자포리자 원전 외부 송전선 수 변화(전쟁 전 10개에서 2026년 8월 0개)와 IAEA 집계 외부전원 완전 상실 누적 횟수(2022년 5회에서 2026년 8월 26회)를 나타낸 도표

3. 상실 사건 타임라인

여기서 ‘완전 상실’은 IAEA가 세는 기준, 즉 외부 송전선이 하나도 연결되지 않아 비상디젤발전기로만 버틴 사건을 뜻합니다. 회선 하나가 끊겨도 다른 회선이 살아 있으면 세지 않습니다.

우크라이나 측(에네르고아톰)은 자체 집계로 8월 20일 사건을 27번째 ‘블랙아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에네르고아톰은 8월 4일 사건까지는 IAEA와 같은 24번째로 셌지만, 8월 8일 하루에 두 차례 끊긴 것을 2건으로 세어 이후 하나가 더 많아졌습니다(양쪽 발표를 대조한 필자 추정). 아래 표들은 IAEA 집계를 따르며, 2026년 9월 13일까지의 IAEA 업데이트를 기준으로 정리했습니다.

2022~2023년: 점령 첫해의 다섯 번, 이듬해의 세 번

날짜지속경위
2022.8.25당일 복구인근 화력발전소 재 처리장 화재로 마지막 750kV 회선 단선. 에네르고아톰 “사상 처음 전력망에서 분리”
2022.10.8약 하루포격으로 마지막 750kV 회선 단선, 디젤발전기 가동. 10월 9일 저녁 재연결
2022.10.12—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주 변전소 피격, 10월 들어 두 번째 완전 상실
2022.11.3약 2일750kV·330kV 회선 동시 단선(발전소 밖 변전소 손상), 11월 5일 복구
2022.11.23—우크라이나 전력망 전반에 대한 공격 여파로 단선
2023.3.9약 11시간750kV 회선 단선. IAEA는 이를 6번째 완전 상실로 집계
2023.5.22—7번째 완전 상실
2023.12.2약 5시간발전소에서 멀리 떨어진 전력망 고장으로 330kV·750kV 순차 단선. 디젤발전기 20대 기동 뒤 8대로 축소 운전

2023년 12월부터 2025년 7월까지 19개월 동안은 완전 상실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 기간에도 회선 하나가 끊기는 일은 반복됐고, 2025년 5월 7일 330kV 회선이 끊긴 뒤에는 750kV 하나에만 의지했습니다.

2025년: 30일간의 정전과 첫 국지 휴전

날짜지속경위
2025.7.4약 3.5시간17시 37분 750kV 단선, 21시 11분 복구. 디젤발전기 18대 기동. 9번째
2025.9.23~10.2330일750kV 단선, 예비 330kV는 5월부터 이미 단선. 사상 최장. IAEA가 처음으로 양측 국지 휴전을 중재해 수리. 10번째
2025.11.8—330kV 회선 6개월 만에 재연결, 두 회선 체제 회복(완전 상실 아님). 이 회선은 이후 12월·1월 2일·2월 10일 세 차례 더 끊겨 각각 국지 휴전 아래 수리됐고 3월 6일 다시 연결됨
2025.12.6약 30분새벽 3시 21분 두 회선 동시 단선. 11번째
2025.12.132시간 이상우크라이나 전력망 전반의 군사 활동 여파로 두 회선 단선. 12번째

2026년: 8개월 동안 14번

날짜지속경위
3.24—750kV 드니프로우스카 단선, 이후 330kV 단일 회선 체제(완전 상실 아님)
4.14 / 4.16 / 4.2690분 / 2시간 이상 / 약 60분330kV 회선 반복 단선. 13·14·15번째
5.28~29약 1시간야간 단선, 원인 미확인. 16번째
6.3 / 6.5~6— / 약 15시간17·18번째. 5월 30일 터빈 건물 드론 피격 무렵
6.10~13약 3일화력발전소 개폐소 부근 손상. 19번째
6.20 / 7.3 / 7.14—20·21·22번째. 7월 14일은 뇌우로 단선
8.1 / 8.4 / 8.8약 1시간 안팎(에네르고아톰 기준)여드레 새 세 번. 23·24·25번째
8.20~9.718일강 북쪽 군사 활동 뒤 330kV 단선. 26번째. 9월 5일 7번째 국지 휴전 아래 수리해 9월 7일 재연결

IAEA는 8월 14일 발표에서 “25번 가운데 13번이 4월 이후 넉 달 동안 일어났다"고 밝혔습니다. 2022년에는 회선 자체가 포격으로 끊기는 일이 많았다면, 2026년에는 남은 회선 하나가 화력발전소 개폐소·변전소·뇌우 같은 여러 원인에 노출된 채 반복적으로 끊기는 양상입니다. 에네르고아톰은 잦은 기동으로 디젤발전기가 마모된다는 점을, IAEA는 회선 하나에 의존하는 구조 자체의 취약성을 각각 강조합니다.

4. 마지막 방어선: 디젤발전기·냉각수·인력

비상디젤발전기와 경유

자포리자에는 고정식 비상디젤발전기 20대와 이동형 발전기 3대가 있습니다(OECD 원자력기구 현황 자료; 2023년 12월 20대 기동, 2025년 7월 18대 기동, IAEA). 외부전원이 끊기면 전부 기동한 뒤 냉각에 필요한 만큼만 남기는데, 독일 연방핵폐기물처리안전청(BASE)이 인용한 IAEA 자료로는 2026년 8월 25일 기준 사용 가능한 19대 가운데 7대가 계속 돌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경유입니다. IAEA에 따르면 규정상 최소 보유량은 열흘치이고, 8월 29일 발표 기준 보유량이 그 수준이었습니다. 발전소 주 저장소로 경유가 마지막으로 반입된 것은 2026년 3월이었고 5월 예정분은 군사 활동으로 미뤄졌으며, IAEA 팀은 2025년 3월 이후 보안을 이유로 경유 저장소 접근을 거부당해 왔습니다. 모든 전원을 잃었을 때 연료 손상까지 남는 시간은 운전 중 원자로보다 훨씬 길지만, IAEA는 구체 수치를 공개하지 않았고 이 글도 추정하지 않습니다.

8월 27~28일 IAEA 팀은 인근 두 곳에서 “수십 톤"의 경유가 발전소로 옮겨지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에 대해 발전소 측(로사톰)은 우크라이나의 진입로 공격 탓에 연료 이송이 위험해 보충이 어렵다고 밝혔고, 우크라이나 측은 앞서 7월부터 러시아가 원전을 ‘핵 협박’에 쓴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IAEA는 원인을 어느 쪽에도 돌리지 않은 채 9월 5일 “경유 비축분이 바닥나고 있어 며칠 안에 전원을 모두 잃을 수 있다"고만 밝혔습니다.

냉각수: 댐이 사라진 뒤

2023년 6월 6일 카호우카 댐이 붕괴하면서 원전의 원래 냉각수원이던 저수지가 사라졌습니다. 발전소는 부지 안의 대형 냉각 연못과, 그해 새로 판 지하수 우물로 대응했습니다. IAEA 자료로 우물은 11개, 공급량은 시간당 약 250㎥이며, 이 물이 12개의 분무 연못(스프레이 폰드)을 채워 안전 계통을 식힙니다.

냉각 연못 수위는 2026년 2월 19일 IAEA 발표 기준 댐 붕괴 이후 3.2m 넘게 내려갔고, 직전 석 달 동안만 약 60cm가 빠졌습니다. 발전소는 연못 안 수로에 격리 둑을 쌓고 이동형 펌프로 물을 옮겨 수로 수위를 약 14.1m로 유지하는데, 펌프가 물을 끌어올릴 수 있는 하한(약 12m)까지 2m 남짓 여유가 있는 셈입니다. 안전 기능에 쓰는 물은 우물로 충분하다는 것이 IAEA의 일관된 설명이지만, 연못 수위는 해마다 내려가는 추세입니다.

2026년 7월에는 물의 다른 얼굴이 문제가 됐습니다. 에네르호다르 시내와 발전소 부지의 전기 설비가 군사 활동으로 손상돼 7월 18일부터 상수도가 끊겼고, 발전소에 상주하는 IAEA 팀도 수돗물을 제한적으로만 썼습니다. 원자로 냉각에 쓰는 우물물은 부족하지 않았지만, 직원과 가족이 사는 도시의 생활용수가 끊긴 것입니다.

사람: 출근길이 전선인 직원들

자포리자의 안전을 지키는 것은 결국 교대 근무를 이어 가는 직원들입니다. 2026년 여름의 IAEA 발표만 추려도 상황은 이렇습니다.

  • 6월 30일 직원 대부분이 사는 에네르호다르의 소방서가 드론 공격을 받아 건물과 소방차 여러 대가 손상됐습니다. 이 소방서는 발전소 자체 소방대의 후방 지원 시설입니다.
  • 7월 12~14일 시내 드론 공격으로 발전소 직원과 협력업체 인력을 포함한 사상자가 났고, 13일에는 병원과 소방서·주거지가, 14일에는 직원 통근 차량이 공격받았습니다. 러시아 국영 로사톰은 이 무렵 발전소 수석 엔지니어가 우크라이나 드론에 숨졌다고 발표했습니다.
  • 8월 18일 직원들이 출근길에 이용하는 버스 정류장에서 드론이 폭발해 1명이 숨지고 19명이 다쳤습니다. 8월 25일에는 냉각 연못 부근 드론 사고로 직원 2명이 다쳤고, 26일에도 건식 저장시설 부근 등에서 드론 사고 2건이 더 있었습니다.

IAEA는 이 사건들에 대해 “원전 직원은 항상 보호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반복할 뿐 공격 주체를 지목하지 않습니다. 사건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공격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드론을 지목하며, 대부분 상대 측 주장을 부인합니다.

5. IAEA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7개 기둥과 5개 원칙

그로시 사무총장은 침공 직후인 2022년 3월 2일 이사회에서 무력 분쟁 중 원자력 안전을 재는 자로 7개의 필수 기둥을 제시했습니다. 시설의 물리적 건전성, 안전·보안 계통의 작동, 직원의 근무 여건과 판단의 자유, 외부전원 공급, 물류 공급망, 방사선 감시와 비상 대응 체계, 규제기관·운영자와의 통신입니다. 2022년 9월 IAEA 보고서는 자포리자에서 이 7개 기둥이 사실상 모두 훼손됐다고 평가했습니다.

같은 보고서에서 IAEA는 발전소 주변에 ‘원자력 안전·보안 보호구역’을 설정하자고 제안했지만, 양측 합의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대신 2023년 5월 30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원자로와 연료 저장시설을 공격하지 않을 것, 원전을 중화기 기지로 쓰지 않을 것, 외부전원을 항상 확보할 것 등 5개 원칙을 내놓았고, 이것이 지금까지 IAEA가 양측에 요구하는 최소 기준으로 남아 있습니다.

상주팀과 국지 휴전

2022년 9월 1일 그로시가 직접 이끌고 들어간 자포리자 지원단(ISAMZ, IAEA Support and Assistance Mission to Zaporizhzhya)은 그 뒤 소수의 전문가가 상시 주재하는 형태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교대팀은 전선을 넘어 들어가야 해서 2025년 2월에는 교대가 한 달 늦어지고 일부 구간을 걸어서 이동했으며, 2025년 12월 교대 때는 4명이 새로 들어갔다고 러시아 측 발전소 공보실 발표를 아나돌루통신이 전했습니다. 상주팀은 매일 부지를 점검하고 방사선량이 정상임을 확인해 발표하지만, 경유 저장소처럼 접근이 거부되는 곳도 있습니다.

2025년 10월부터 IAEA가 새로 시도한 것이 국지 휴전 중재입니다. 송전선 수리 구간에 한해 양측이 사격을 멈추게 하고 IAEA 팀이 강 양쪽에서 작업을 지켜보는 방식으로, 30일 정전을 끝낸 2025년 10월 첫 합의부터 2026년 9월 5일까지 7차례 이뤄졌습니다. 다만 6월 휴전으로 750kV 회선의 발전소 쪽 구간을 고쳤어도 먼 변전소가 망가져 전기를 못 보내는 것처럼, 휴전은 수리를 가능하게 할 뿐 전력망을 지켜 주지는 못합니다.

정리하면 IAEA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록·확인·중재이고, 할 수 없는 것은 공격을 막거나 원인을 판정하는 일입니다. 그로시는 9월 5일 “양측이 원자력 안전을 위해 건설적으로 협력하고 있다"고 했지만, 같은 주 로사톰 리하초프 사장은 “330kV 회선을 고쳐도 외부전원 재개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고 우크라이나 측의 공식 반응은 이 글 기준일까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6. 한국 독자의 질문: 우리 원전은 어떻게 대비돼 있나

자포리자는 전쟁이라는 극단적 조건이지만, “외부전원이 끊기면 어떻게 되나"라는 질문은 후쿠시마 이후 모든 원전이 받은 질문입니다. 한국은 2011년 사고 직후 정부가 50개 개선대책을 정했고(뒤에 56개로 확대), 그 이행 상황은 원안위 의결 문서에 남아 있습니다. 규제기관과 사업자의 역할 구분은 한국 원전 산업 지도에 정리했습니다.

전원은 네 겹입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2014년 5월 고리·한빛·월성·한울 4개 본부 모두에 3,200kW급 이동형 발전차 배치를 마쳤다고 발표하며, 한전에서 받는 수전선로, 비상디젤발전기, 대체교류발전기, 이동형 발전차의 4중 비상전원을 갖췄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동형 발전차는 공랭식 가스터빈이라 외부 냉각수 없이 돌고, 이후 1MW급 발전차가 추가돼 부지별로 1MW·3.2MW 두 종류를 두고 있습니다(아시아경제 고리 2호기 르포, 2026년 3월 19일).

새 원전은 기준이 한 단계 더 올라갔습니다. 2025년 12월 30일 원안위가 의결한 새울 3호기 운영허가(안) 안건 문서(제228회 회의, 2026년 9월 기준 원안위 공개)를 보면 다음이 확인됩니다.

  • 후쿠시마 개선대책 50개 중 새울 3호기 해당 33개가 모두 이행 완료됐고, 그 안에 ‘이동형 발전차량 및 축전지 확보(3-1)‘와 ‘대체비상디젤발전기 설계기준 개선(3-2)‘이 들어 있습니다.
  • 안전등급 부하(계열당 약 7,000kW)에 전원을 대는 비상디젤발전기 7,500kW 2대에 더해, 모든 교류전원이 끊기는 소내정전에 대비한 대체교류디젤발전기(7,200kW)를 호기당 1대 두었습니다. 선행 호기인 신한울 1·2호기는 두 호기가 1대를 공용했습니다.
  • 이 대체교류발전기는 연료를 72시간 연속 운전 분량으로 늘렸고(신한울 1·2호기는 24시간), 내진등급을 최고 등급으로 올렸으며, 침수에 대비해 부지보다 3.45m 높은 곳에 설치했습니다.
  • 사고관리계획서에는 저압·고압 이동형 펌프와 1MW·3.2MW 이동형 발전차가 현장에 완비된 것으로 기재돼 있습니다.

다만 여기까지가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범위입니다. 가동 중인 원전 각 호기의 외부 송전선 수나 경유 보유 일수 같은 세부 수치는 공개 자료에서 호기별로 확인하지 못해 이 글에 적지 않았습니다. ‘조치 완료’와 ‘검증 완료’는 별개의 질문이라는 점은 남겨 둡니다.

자포리자가 보여 주는 것은 설비 목록보다 ‘겹’의 의미입니다. 전쟁 전 10개이던 송전선이 1개가 되고, 남은 1개마저 끊긴 뒤에는 디젤발전기와 경유 반입로, 우물, 그리고 사람이 순서대로 마지막 겹이 됩니다. 한국 원전의 4중 전원과 72시간 연료도 결국 “그다음 겹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고, 그 답이 실제로 작동하는지는 훈련과 검사로만 확인됩니다.

핵심 정리

  • 원자로를 멈춰도 붕괴열과 사용후연료 저장조 때문에 냉각 펌프·계측·환기에 전기가 계속 필요하며, 후쿠시마 사고는 정지 뒤 전원을 잃어 일어났다.
  • 자포리자는 2026년 3월 24일 이후 330kV 예비 회선 하나에 의존하다 8월 20일 그마저 끊겨 IAEA 집계 26번째 완전 상실이 18일간 이어지다 9월 7일 재연결로 끝났다(2026년 9월 13일 기준). 8월 말에는 경유가 규정상 최소 열흘치까지 줄었었다.
  • IAEA는 기록·확인·국지 휴전 중재까지는 할 수 있지만 공격을 막거나 원인을 판정할 수는 없다. 한국 원전은 4중 비상전원을 갖췄고, 새울 3호기는 호기당 1대·72시간 연료의 대체교류발전기를 두었다.

참고 자료: IAEA 사무총장 우크라이나 상황 업데이트 Update 354(2026.6.19)·356(7.2)·358(7.15)·359(7.23)·361(8.6)·362(8.14)·363(8.20)·364(8.29) 및 9월 5일 국지 휴전 발표·9월 8일 재연결 확인, 에네르고아톰 9월 7일 재연결 발표, World Nuclear News 재연결 보도(2026.9.8), IAEA ‘우크라이나 원자력 안전·보안·안전조치’ 주제 페이지(7개 기둥, 2022.3.2), IAEA 2022년 9월 보고서(보호구역 제안), 유엔 안보리 회의록 SC/15300(5개 원칙, 2023.5.30), IAEA 업데이트 2025.7.4(9번째 상실)·2025.12.6(11번째)·2025.12.13(12번째)·2026.2.19(냉각 연못 수위)·2026.4(13~15번째), OECD/NEA 우크라이나 원자력시설 현황 페이지(2026.4.24), 독일 연방방사선방호청(BASE) 우크라이나 현황 페이지(2026.8.25), 세계원자력협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원자력’ 및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정보 페이지, World Nuclear News 2023.12.4·2025.7.7·2025.10.23·2025.11.10·2026.9.1 보도, 신화통신 2026.5.29 보도, Kyiv Independent 2026.6 보도, 에네르고아톰 발표·우크라인스카 프라우다 2026.8.4·8.20 보도, UNN 2026.8.20·9.5 보도, 로이터 2026.7.24·8.29·9.5 보도(Daily Maverick·Al Jazeera·Global Banking and Finance 게재), 미국 군축협회 Arms Control Today 2026.9월호, 아나돌루통신 2025.12.3 보도(IAEA 교대), AP·PBS 2022.10.8 보도, The Hill 2022.10.12 보도, 알자지라 2022.8.25 보도, 원자력안전위원회 제228회 회의 새울 3호기 운영허가(안) 심의 문서(2025.12.30), 한국수력원자력 보도자료 ‘全 원전 본부에 이동형 발전차 배치 완료’(2014.5.7), 아시아경제 고리 2호기 르포(2026.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