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광 시계는 지금도 방사성일까 — 라듐에서 삼중수소, 그리고 축광 도료까지

서랍 속 낡은 시계 바늘은 방사성일까요? 라듐, 삼중수소, 축광 도료 세 세대의 원리와 착용 선량, 빈티지 라듐 시계 보관법, 국내 규제 범위를 확인된 자료로 정리했습니다.

수치 기준일 2026년 10월 2일 — 이 글의 통계·가격·일정·규제 현황은 이 날짜에 확인한 값입니다. 본문에 따로 적힌 기준일이 있으면 그 날짜가 우선합니다.

불을 끈 방에서 서랍 속 낡은 손목시계를 꺼냅니다. 아버지가 물려주신 시계인데, 바늘 끝이 어슴푸레 보입니다. 이 빛은 방사선일까요.

답은 시계가 어느 세대에 속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야광 시계는 만든 시기에 따라 방사성 물질이 아예 다르거든요. 세대별로 원리와 선량을 하나씩 짚어 보겠습니다. (2026년 10월 기준)

야광의 세 세대

야광 시계 세 세대(라듐 도료, 삼중수소, 축광 도료)의 발광 원리, 방사성 물질, 반감기, 착용 선량 수준, 식별법을 비교한 표

1세대는 라듐-226 도료입니다. 라듐이 내는 알파선이 황화아연 형광체를 때려 빛을 냅니다. 미국에서 라듐 도료 손목시계가 마지막으로 만들어진 때는 1968년으로 알려져 있고, 독일 연방방사선방호청(BfS)도 1960년대까지 라듐이나 프로메튬이 쓰였다고 설명합니다. 도료를 칠하던 여공들이 붓을 입술로 다듬다가 라듐을 삼킨 사건이 가장 유명하죠.

2세대는 삼중수소입니다. BfS에 따르면 1960년대 이후에는 삼중수소를 섞은 도료가 1990년대 중반까지 쓰였습니다. 지금은 삼중수소 가스를 채워 밀봉한 작은 유리관(GTLS)을 씁니다.

관 안쪽 형광체를 삼중수소의 약한 베타선이 자극해 스스로 빛납니다. 반감기는 약 12.3년이라 해가 갈수록 어두워집니다.

3세대는 축광 도료입니다. 슈퍼루미노바 같은 스트론튬 알루미네이트 계열 안료로, 1993년 일본 네모토 연구진이 라듐 도료의 안전한 대체품으로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빛을 받아 두었다가 몇 시간에 걸쳐 내놓는 방식이라 방사성 물질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 대신 빛을 못 받으면 금세 어두워집니다.

문자판의 ‘T25’는 무슨 뜻일까

삼중수소 시계 문자판에는 ‘T’, ‘H3’, ‘T25’ 같은 표시가 붙습니다(BfS). T25는 시계 한 개에 든 삼중수소 총량이 25mCi(925MBq) 이하라는 뜻입니다. 미국 NRC의 면제 한도(10 CFR 30.15)가 시계 1개 25mCi, 바늘 5mCi, 문자판 15mCi로 같은 숫자입니다.

스위스 시계는 ‘Swiss T<25’처럼 새기고, 스위스산 축광 시계에는 ‘L’이 들어간다는 소개도 있습니다. T100은 25mCi를 넘어 100mCi까지를 가리킨다는 판매업계 설명이 있으나 규제 문서에서 직접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차고 다니면 얼마나 받을까

라듐 시계부터 보겠습니다. 라듐의 붕괴 사슬에서 나오는 납-214와 비스무트-214가 내는 감마선이 손목에 찬 시계에서 나오는 방사선의 주된 원인입니다.

미국 보건물리학회(HPS)는 연 수십 μSv에 이를 수 있다고 봅니다. 한국인 연간 자연방사선(약 3mSv)에 견주면 훨씬 작은 편입니다.

문제는 피부입니다. BfS는 라듐 37,000Bq(1μCi)짜리 시계를 하루 16시간 1년 내내 차면 손목 피부의 국소 선량이 16mSv에 이른다고 계산합니다(독일의 연간 피부 국소 선량 한도 50mSv보다는 낮은 값입니다). 게다가 라듐에서는 기체인 라돈이 나옵니다.

삼중수소 시계는 사정이 다릅니다. 삼중수소의 베타선은 에너지가 매우 약해 유리와 케이스를 거의 통과하지 못합니다.

BfS는 가스관형 시계의 연간 유효선량이 0.1μSv보다 한참 낮고, 삼중수소 도료 시계도 대체로 연 20μSv 이하라고 설명합니다. 가스관형 시계가 완전히 부서져 삼중수소가 전부 흡입되는 가정에서도 약 20μSv입니다.

국내 연구진(KINS·경희대)의 삼중수소 소비재 선량평가 포스터도 일반인의 파손·화재 시나리오는 보수적으로 가정해도 대부분 1mSv 아래였다고 정리했습니다. 다만 산업용·군용처럼 제품이 한곳에 많이 쌓이면 일반인 한도를 넘을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삼중수소는 몸에 들어가도 대개 한 달 안팎에 소변으로 빠지지만, 유기물과 결합한 형태(OBT)는 더 오래 남을 수 있습니다(EPA). 이 물질은 후쿠시마 오염수(일본 측 표현으로는 ‘ALPS 처리수’) 뉴스에서 귀에 익은 바로 그 삼중수소이고, 방류 3년째 숫자는 따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축광 도료 시계는 방사선이 없으니 선량도 없습니다.

서랍 속 라듐 시계를 가진 분께

라듐 시계의 본질적 위험은 시계를 차는 것보다 도료 가루가 몸속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라듐이 내는 알파선은 몸 밖에서는 피부 각질층도 못 뚫지만 안으로 들어오면 위험도가 가장 높은 방사선으로 꼽힙니다. 감마선이 함께 나오므로 가루가 묻은 손과 먼지가 오염 경로가 됩니다.

HPS의 답변은 분명합니다. 온전한 시계는 특별한 취급이 필요 없지만, 열거나 도료를 긁어내려 하지 마세요. 시계방에 분해 수리를 맡기는 것도 같은 이유로 피하는 편이 낫습니다.

보관에서는 라돈이 변수입니다. 영국 연구진(Gillmore·Crockett, 2012, 학회 포스터)은 개인 수집품 규모의 라듐 시계를 67㎥ 크기의 방에 두고 라돈을 쟀습니다. 시계를 넣기 전 약 10Bq/㎥였던 값이 환기를 최대로 하자 약 190~230Bq/㎥, 환기를 줄이자 약 2~3kBq/㎥까지 올랐고, 환기가 전혀 없을 때는 5kBq/㎥ 이상으로 추정했습니다.

환기를 줄였을 때의 값은 영국의 가정 조치 수준 200Bq/㎥을 크게 넘습니다. 우리나라 주택 권고 기준은 148Bq/㎥입니다. 연구진은 언론 인터뷰에서 시계 상자를 실내가 아니라 바깥에서 열라고 권했습니다.

라듐인지 아닌지는 측정기로 재는 것이 가장 확실합니다. HPS는 방사선 안전관리자가 있는 대학·병원이나 보건 당국에 문의하라고 안내합니다.

독일은 의심 시계를 제조사나 판매처에 무료로 반환하게 하고 일반 쓰레기 배출을 금지합니다(BfS). 국내의 공개된 회수 창구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버리기 전에 원자력안전위원회나 KINS에 먼저 문의하시길 권합니다.

국내 규정은 어디까지 확인될까

2024년 한국방사선방호학회지(JRPR)에 실린 신지민 등의 비교 연구에 따르면, 국내에는 방사성동위원소 규제 제외 고시가 있고 시계를 포함한 계기·지시기의 발광 물질은 조건을 갖추면 규제에서 빠집니다. 조건은 발광 물질이 제품에 단단히 박혀 있고, 방사성 물질과 닿지 않는 구조이며, 표면선량률이 1μSv/h 이하이고, 개당 방사능이 일반 면제량의 50배 이하인 경우입니다. 다만 일반 면제 기준량이 100kBq 미만인 핵종을 포함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도 있어, 라듐 시계가 여기에 해당하는지는 원문으로 따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이 고시 덕에 이런 소비재가 별도 규제 없이 시장에 나와 왔다는 설명입니다.

여기까지가 확인된 범위입니다. 삼중수소 시계 한 개에 허용되는 구체적 수량과 수입·통관 절차는 원문 확인이 안 됐습니다. 참고로 KINS 포스터는 2010년 한 해 GTLS 제품이 약 850TBq 수입됐다고 적었는데, 시계만의 수치는 아닙니다.

공부한 입장에서 이 주제를 정리하면, 세 세대를 가르는 질문은 선량의 크기보다 ‘가루가 되어 몸에 들어올 수 있느냐’였습니다. 그래서 서랍 속 시계는 열지 않고 두는 것이 가장 단순한 수칙이라고 생각합니다.

건강 안내 — 이 글은 방사선 방호 관점의 일반 정보이며 진단·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건강에 관한 결정은 담당 의료진과 상담하세요.


참고 자료: 독일 연방방사선방호청(BfS) 시계 속 방사성물질 안내, 미국 NRC 10 CFR 30.15 및 연방관보(1998.6.17 삼중수소 시계 최종 규칙), 미국 보건물리학회(HPS) Ask the Experts 질의 11972·7667·8650, ORAU 보건물리 박물관 라듐 다이얼 시계, 미국 EPA 삼중수소 개요, Gillmore·Crockett(2012) EGU 포스터, KINS·경희대 연구진 삼중수소 소비재 선량평가 IRPA 포스터, 신지민 등(2024) JRPR, 슈퍼루미노바 자료(위키피디아, 미국 특허 US5424006), Chronext 삼중수소 표기 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