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리포트] 한국 원전은 지진에 몇 g까지 버티게 설계됐나 — 부지별 내진·침수 대비 총정리

2016년 경주 지진 이후 한국 원전은 몇 g까지 버티도록 보강됐을까요. 부지별 설계 지진(SSE)과 해일·침수 대비 수치를 정리하고, 양산단층·고리 인구밀집 등 비판 쪽 논거도 함께 짚습니다.

수치 기준일 2026년 9월 29일 — 이 글의 통계·가격·일정·규제 현황은 이 날짜에 확인한 값입니다. 본문에 따로 적힌 기준일이 있으면 그 날짜가 우선합니다.

2016년 9월 12일 밤 8시 32분, 경주에서 국내 계기관측 사상 최대인 규모 5.8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월성 부지 4기가 동시에 수동정지됐고, 인명·설비 피해는 없었죠. 계측값은 설계 한계 아래였지만, “우리 원전은 몇 g까지 버티게 설계됐나"라는 질문을 대중이 처음 실감한 순간이었습니다.

경주, 그리고 한 달여 뒤 포항 지진을 겪은 독자라면 사건 자체는 이미 기억하실 겁니다. 이 글은 사건을 다시 늘어놓는 대신 숫자에 집중했어요. 몇 g까지 버티나, 경주 지진 뒤 뭐가 바뀌었나, 해일·침수 대비는 어떤가, 비판 쪽은 무엇을 문제 삼는가 — 이 네 갈래로 정리해 봤습니다.

한눈에 보기

  • 구형 원전은 설계 지진 0.2g, 2016년부터 가동한 APR1400(새울 1·2호기)은 0.3g입니다. 새울 3·4호기는 2017년 한수원이 0.5g 보강을 목표로 발표했고요.
  • 경주 지진 뒤 정부는 기존 호기 전체를 0.2g에서 0.3g로 올리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월성 6기는 보강이 완료됐다고 국내 언론이 보도했습니다.
  • 후쿠시마 이후 고리는 방벽을 10m로 높였고, 한빛·한울은 10~12m 자연 지반고도로 대응했습니다. 전 부지에 밀폐형 방수문도 설치했어요.

1. 우리 원전은 몇 g까지 버티게 설계됐나

설계의 기준이 되는 숫자는 하나, 최대지반가속도입니다. 중력가속도 대비 비율(g)로 표시하며, 0.2g는 중력의 20%에 해당하는 흔들림에서도 안전계통이 작동해야 한다는 뜻이죠. 국내 일부 기술문서가 쓰는 갈(Gal) 단위로는 0.2g가 196Gal, 0.3g가 294Gal입니다.

한국 원전의 설계 기준은 두 세대로 나뉩니다.

  • 0.2g (규모 6.5급 상당): 고리·한울의 초기 호기, 한빛 전 호기, 월성 중수로까지 APR1400 이전에 지은 모든 호기의 원래 기준입니다(원전 호기 지도 참고).
  • 0.3g (규모 7.0급 상당): APR1400의 설계 기준입니다. 새울 1·2호기(옛 신고리 3·4호기, 각각 2016·2019년 상업운전)부터 적용됐고 새울 3·4호기와 신한울 호기로 이어지죠(설계 자체는 APR1400 해설 참고).

예외가 하나 있습니다. 2017년 공론화를 거친 신고리 5·6호기(현 새울 3·4호기)를 두고 한수원은 2017년 11월 7일, 규모 7.4급 상당인 0.5g까지 보강하겠다고 밝혔죠. 당시 국내 최고 수준 목표였는데, 이 수치가 최종 인가 설계까지 그대로 유지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참고로 일본은 부지마다 기준(Ss)이 달라 후쿠시마 이후 가시와자키가리와는 1.0g까지 올랐고, 미국은 원전마다 부지별 확률론 평가를 새로 돌립니다. 나라별 규제 방식 자체가 다르다는 뜻이죠.

2. 경주 지진 뒤 뭐가 바뀌었나

월성 부지 계측값은 대략 0.12g, 한 건물벽 센서는 최고 0.1585g까지 찍었습니다. 수동정지 기준인 0.1g는 넘었지만 자동정지 기준 0.18g와 설계 기준 0.2g 밑이었죠.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와 산업부는 몇 주 만에 기존 호기 전체를 0.3g(규모 7.0)로 보강한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2019년 말이던 전국 스트레스테스트 일정도 2018년 말로 앞당겼고요. 월성·고리는 2017년 말까지 우선 완료 대상으로 잡혔습니다.

  • 완료 신고와 검증 사이 시차: 2017년 11월 기준 한수원은 24기 중 21기 물리적 완료를 보고했지만, 원안위의 독립 검증은 고리 1호기·월성 1호기 단 2기만 마쳤습니다. 자체 보고와 확인된 서명 사이에 간극이 있었던 셈이죠.
  • 결과: 월성 6기는 결국 0.3g 기준까지 보강이 완료됐다고 국내 언론이 보도했습니다. 이 보강 사업만의 비용을 따로 밝힌 자료는 확인되지 않았고, 지진·침수·수소안전을 아우른 후쿠시마 이후 대책 전체는 2011~2017년 약 1조 원 안팎이 들었다고 한수원 집계를 인용한 외신이 전했죠.

같은 해 11월 15일에는 월성 인근 40km 지점 포항에서 규모 5.4 지진이 났습니다. 건물 피해 기준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였지만, 2018년 『사이언스』에 실린 연구들은 인근 지열발전 실증사업의 유체 주입으로 유발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지었죠. 원전 운영과는 무관한 원인이었지만, 경주·포항·울산 벨트의 지진 위험에 관심이 쏠리는 계기가 됐습니다.

두 지진은 모두 고리·새울·월성 부지 옆을 남북으로 지나는 양산단층 논쟁으로 이어졌습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2009~2012년 조사는 이 단층이 활성단층이라는 결론을 냈지만, 국내 매체 뉴스민 등의 보도에 따르면 당국은 공개하지 않았고 2016년 이후에야 뒤늦게 알려졌죠.

이후 정부는 2017~2036년, 20년짜리 4단계 국가 활성단층 조사를 시작해 양산·울산단층부터 다시 조사했습니다. 단층의 현재 활동 여부를 하나로 정리한 정부의 공식 결론은 아직 확인되지 않습니다.

규제 체계도 그사이 바뀌었습니다. 원안위는 후쿠시마를 계기로 2011년 10월 진흥과 규제를 겸하던 부처에서 독립했고, 기술 심사는 산하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이 맡죠. 심사 절차는 원전 허가 7단계에 정리했습니다.

가동 중인 원전은 대략 10년마다 안전성을 다시 살피는 주기적 안전성평가(PSR)를 받는데요. 계속운전을 신청하지 못하고 영구정지된 고리 1호기가 이 절차와 얽힌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고리 1호기 해체 추적기 참고).

3. 해일·침수 대비, 후쿠시마가 남긴 또 다른 숙제

후쿠시마 제1원전의 설계 해일 높이는 약 5.7m였는데, 2011년 3월 11일 실제로 덮친 파도는 14~15m에 달했습니다. 한국 규제당국과 한수원은 지진 자체보다 이 격차를 더 직접적인 교훈으로 받아들였죠.

가장 눈에 띄는 보강은 고리입니다. 구간별로 7.5~9.5m였던 콘크리트 방벽을 2.1km 구간에 걸쳐 10m로 균일하게 높였고, 2013년 약 166억 원을 들여 마쳤죠. 반면 한빛·한울은 해발 10~12m 자연 지반고도 자체를 방어선으로 삼아 별도 방벽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월성의 방벽 높이는 확인된 자료가 없습니다. 태풍에 따른 최대 예상 해수면 상승치를 다룬 별도 문서는 2m 미만이라고 밝히지만, 이는 해일 설계 기준과는 다른 수치라 그대로 견주면 안 되고요.

한국 원전 4개 부지의 설계 지진(g)과 침수 대비 높이, 2016년 경주 지진 계측값을 0.2g·0.3g 설계 한계와 비교한 막대그래프

2014년 3월부터는 전 부지에 새 방수문을 달았습니다. 바깥 수압이 오를수록 더 단단히 밀폐되고, 약 157kg으로 가벼워 운전원이 수동으로도 몇 분 안에 닫을 수 있죠. 고정 비상발전기가 건물이 밀폐되지 않으면 함께 침수될 수 있다는 후쿠시마 이후의 지적에 따라, 이동형 디젤발전기와 소방펌프차도 각 부지에 별도로 배치했습니다.

4. 비판 쪽 논거: 양산단층과 고리 인구밀집

숫자 하나보다 더 자주 나오는 비판은 지리 자체입니다. 고리·새울이 함께 있는 부지는 세계적으로도 손꼽히게 조밀한 대도시권 인구 옆에 있죠. 반경 30km 안에 380만 명 넘는 인구이 살고, 한 국회의원은 50km 안 약 500만 명이 중대사고 시 신속 대피가 어렵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윤순진 교수는 여러 호기를 한 부지에 몰아 지을 때의 위험을 지금의 비용 평가가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고, 여러 호기가 동시에 사고를 낼 확률(부지 단위 위험)을 정량화하는 체계가 아직 없다고 지적합니다.

경주·울산 지역 시민단체들은 좀 더 구체적인 논거를 폅니다. 경주환경운동연합, 핵없는사회를위한공동행동 등은 2015년 월성 1호기 계속운전 결정에 항의하며 공개되지 않았던 2009~2012년 양산단층 조사 결과를 근거로 들었죠. 이는 별개의 경제성 문제로 2019년 12월 영구정지된 월성 1호기 논쟁과는 다른 갈래입니다.

한수원과 원안위는 2016년 이후 보강과 진행 중인 단층 조사가 이 우려에 대한 답이라는 입장입니다. 이 논쟁에는 아직 어느 쪽으로도 결론이 나 있지 않고요.

5. 부지별 수치 (2026년 9월 기준)

새울 3·4호기의 0.5g은 한수원의 2017년 발표 목표이며, 최종 인가 설계로 재확인된 수치는 아닙니다.

부지호기 수설계 지진(g)침수 대비
고리/새울100.2g 기존호기, 0.3g 새울1·2, 0.5g 목표 새울3·4방벽 10m, 2013년 완공
월성60.2g 기존설계, 2016년 이후 0.3g 보강부지고도 12m, 방벽 높이 미공개
한빛60.2g 기존호기부지고도 10m, 별도 방벽 없음
한울80.2g 기존호기, 0.3g 신한울1~4부지고도 10m, 별도 방벽 없음

관련 산업 한 걸음 더

이 논의의 상장 당사자는 한수원(비상장)이 아니라 원전을 짓고 심사받는 협력사 쪽에 있습니다. 두산에너빌리티(코스피 034020)는 원자로 용기·증기발생기 등 내진 설계 여유를 실제 설비에 담아내는 대형기기 공급사이고, 한전기술(코스피 052690)은 원안위 인허가 심사에 들어가는 부지 지진·침수 위험 분석 상당 부분을 수행하죠.

본 내용은 산업 이해를 돕기 위한 정보이며, 특정 종목의 매수·매도 추천이 아닙니다. 투자의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국가 활성단층 조사는 2036년까지 이어집니다. 전공자로서 다시 훑어보면, 흔들림 자체보다 2017년 한수원의 완료 보고와 원안위의 검증 완료 사이 시차가 더 눈에 걸리는데요. 설계 수치는 그것이 실제로 시공됐는지 확인하는 검증이 뒤따를 때만 의미를 가집니다.


참고 자료: 세계원자력협회(WNA) “Nuclear Power Plants and Earthquakes” 및 한국 국가 프로필(2026년 9월 확인), World Nuclear News(2017년 8월), 이데일리·한국일보·이투데이·문화일보·세계일보·경상일보·서울신문의 2016~2017년 내진보강·방벽 관련 보도, S&P Global Platts(한수원 집계 인용), 뉴스민의 양산단층 보도, 경향신문의 국가 활성단층 조사 보도, Kim, S. et al. 및 Grigoli, F. et al., Science(2018) 포항 지진 관련 논문, IAEA Safety Guide SSG-9·SSG-18, 원자력안전위원회·한국수력원자력 공개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