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과 지진이 같이 오면 원전은 — 복합재난과 후쿠시마 15년의 교훈
9월 태풍철, 태풍과 지진이 겹치면 원전은 어떻게 되나. 2020년 태풍으로 원전 6기가 멈춘 이유, 후쿠시마 이후 15년간 보강된 설계 기준과 비상전원, 방재 훈련, 그리고 주민이 알아둘 대피·요오드 원칙을 정리합니다.
수치 기준일 2026년 9월 6일 — 이 글의 통계·가격·일정·규제 현황은 이 날짜에 확인한 값입니다. 본문에 따로 적힌 기준일이 있으면 그 날짜가 우선합니다.
2020년 9월 3일 새벽, 태풍 마이삭이 부산을 지나던 시간에 고리 3·4호기와 신고리 1·2호기가 잇달아 자동정지했고, 정지 중이던 고리 1·2호기도 외부전원을 잃어 비상디젤발전기가 돌았습니다. 나흘 뒤 하이선이 지나가자 월성 2·3호기의 터빈이 섰습니다(원자로는 60% 출력 유지). 태풍 두 개에 여섯 기가 발전을 멈춘, 국내 원전 역사에서 드문 사건이었습니다.
올해는 어땠을까요. 8월 하순 전남 해남에서 열흘간 70차례 넘게 이어진 연속 지진 가운데 8월 23일 규모 3.1 지진이 났을 때, 가장 가까운 한빛원전의 지진계측값은 0.0032g로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는 “이상 없음"을 발표했습니다. 9월 초 제24호 태풍 크로반은 오키나와 부근에서 이례적으로 맴돌아 한반도 상륙 가능성은 매우 낮았고, 제주에 강풍·높은 파도 정도의 간접 영향에 그쳤습니다(2026년 9월 6일 기준).
2026년 8~9월에 태풍이나 지진으로 국내 원전이 멈춘 일은 없습니다. 그래도 태풍철마다 원자력 일을 하는 사람 머릿속에 남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태풍과 지진이 같은 날 오면 어떻게 되는가입니다.
1. 복합재난 — 사고와 대응 실패가 동시에 오는 것
후쿠시마 제1원전 2011년 3월 11일의 순서를 다시 보면 답의 절반이 보입니다. 규모 9.0 지진에 1~3호기는 설계대로 자동정지했고, 외부 송전선이 끊겨 비상 디젤발전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약 40~50분 뒤 설계 기준(5.7m)의 두 배가 넘는 약 15m 쓰나미가 부지를 덮쳐 디젤발전기와 1·2호기 배터리까지 잠겼습니다. 전기가 없으니 펌프가 서고 냉각이 멎었으며, 1호기는 이튿날 오후 수소폭발까지 약 25시간이 걸렸습니다.
여기서 복합재난의 뜻이 나옵니다. 자연재해가 원전 사고를 일으키는 동시에 그 재해가 대응까지 막는 상황입니다. 도로가 끊겨 발전차가 못 오고, 통신이 끊겨 대피 방송이 안 되며, 외부전원이 오래 끊깁니다.
외부전원 상실이 원전에 왜 치명적인지는 자포리자 외부전원 글에서 따로 다뤘습니다. 후쿠시마 이후 세계 규제기관의 설계 질문은 “지진에 견디는가"에서 “지진 뒤에 오는 것까지 견디는가"로 바뀌었습니다. 그 사고의 뒷정리가 15년 뒤 어디까지 왔는지는 오염수 방류 3년 글에 있습니다.
2. 2020년 9월 3일, 여섯 기가 멈춘 이유
원안위·산업부 합동조사(2020년 9월 25일 발표)의 결론은 뜻밖에 단순했습니다. 바람이 실어 온 소금기였습니다. 고리 1~4호기와 월성 2·3호기는 발전량을 재는 계기용변성기에 염분이 붙어 순간적으로 불꽃이 튀는 섬락이 일어나 차단기가 열렸고, 신고리 1·2호기는 강풍에 765kV 송전탑 점퍼선이 철탑에 가까워지며 섬락이 났습니다.
고리 부지 최대풍속 32.2m/s, 월성 33.1m/s였습니다.
원자로가 아니라 전기를 내보내는 바깥 설비가 약한 고리였다는 뜻입니다. 원안위는 주변압기·대기변압기·계기용변성기 등 외부 노출 설비를 밀폐형으로 바꾸고, 태풍이 올 때 미리 출력을 낮추거나 정지하는 절차를 마련하도록 요구했습니다. 원전은 정지 뒤에도 노심 냉각을 위해 전기가 필요하니, 외부 전력계통이 흔들리는 것 자체를 줄이겠다는 조치입니다.
3. 한국 원전의 설계 기준과 후쿠시마 후속조치
한국 원전의 지진·해일 대비를 항목별로 적으면 이렇습니다.
- 내진 설계 — 기존 원전은 지반가속도 0.2g(규모 6.5 안팎), APR1400 신형 원전은 0.3g(규모 7.0 안팎)입니다. 후쿠시마 이후 기존 원전도 원자로를 안전하게 세우고 식히는 핵심 계통(안전정지유지계통)은 0.3g로 보강했습니다. 지진계측값 0.1g가 넘으면 수동정지, 0.18g면 자동정지입니다.
- 실제로 멈춘 적 — 2016년 9월 경주 지진(규모 5.8) 때 월성 부지 계측값이 0.1g 안팎이어서 월성 1~4호기를 수동정지했고, 2017년 11월 포항 지진(규모 5.4)은 정지 기준에 못 미쳐 정상 운전했습니다. 두 번 다 설비 손상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 해일·침수 — 후쿠시마 후속조치 56건(한수원 집계, 규제기관 집계로는 50건) 가운데 고리 해안방벽을 7.5m에서 10m로 높이고, 안전 관련 건물에 방수문을 달았습니다.
- 비상전원 — 한전 수전선로 → 비상 디젤발전기 → 대체교류발전기 → 이동형 발전차의 4중 체계입니다. 2012년 고리·월성, 2014년 4월 한울·한빛까지 4개 본부에 3.2MW급 발전차 배치를 마쳤고, 원안위가 호기당 1대씩 추가를 요구해 1MW급을 더 두었습니다. 고리 2호기의 경우 1MW 발전차를 최대 침수위(2.0m)보다 높은 2.45m 차수벽 안에 보관합니다(2026년 3월 기준).
- 냉각수 외부 주입 — 이동형 펌프차로 바닷물을 원자로에 직접 넣는 유로가 생겼습니다.
56건의 완료 상태는 2024년 3월 기준 55건 완료였고, 마지막 1건인 격납건물 배기감압설비(CFVS)는 원래 설계가 2016년 법 개정에 맞지 않아 이동형 고유량 펌프로 대체해 2024년 12월까지 배치하는 계획으로 발표됐습니다. 그 뒤 최종 완료 발표는 이 글을 쓰는 시점에 공개 자료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2026년 9월 기준).
4. 훈련은 어떻게 하나
설비는 훈련으로 확인됩니다. 국내 방사능방재훈련은 세 층입니다.
- 국가 연합훈련 — 원안위 주관, 매년 원전 부지를 돌아가며 실시합니다. 2024년 9월 새울 2호기는 “울산 동해상 규모 8.6 지진 뒤 중대사고"를, 2025년 9월 30일 한울 5호기는 “지진과 방사능 누출"을 가정해 18개 중앙부처와 주민 등 2,400여 명이 참여했습니다. 둘 다 복합재난이 주제였습니다.
- 합동훈련 — 지자체 주관으로 2년마다, 주민 보호조치 중심입니다.
- 사업자 훈련 — 한수원이 매년 호기별로 합니다. 이번 9월 3일 한울 6호기 훈련은 시나리오를 사전에 알리지 않는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국제적으로도 흐름이 같습니다. IAEA는 후쿠시마 교훈으로 개발한 ‘다른 사고·재난과 겹친 원자력 비상 대비’ 과정을 2026년 5월 칠레에서 중남미·카리브 16개국 21명을 대상으로 처음 열었습니다. 지진·홍수와 원자력 비상이 동시에 오는 상황을 실습하는 과정입니다.
5. 주민이라면 — 어디까지, 무엇을
원전 근처에 살거나 여행 중이라면 세 가지만 기억하면 됩니다.
- 구역 — 원전 반경 3~5km는 예방적보호조치구역으로, 적색비상이면 방사능 측정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대피합니다. 20~30km는 긴급보호조치계획구역으로, 측정·예측 결과에 따라 조치가 정해집니다.
- 옥내대피와 소개 — 원안위 기준으로 이틀간 예상선량 10mSv면 옥내대피, 일주일 50mSv면 소개(대피)입니다. 창문을 닫고 집 안에 머무는 것이 먼저이고, 대피는 그 다음 단계입니다. 이 선량이 몸에 어떤 뜻인지는 문턱선량 글의 눈금과 비교하면 됩니다.
- 갑상선방호약품 — KI라고 부르는 방사성요오드가 갑상선에 쌓이는 것을 막는 안정요오드 알약으로, 갑상선 예탁선량 100mGy가 복용 판단선입니다. 울산 등 지자체는 읍·면·동을 통해 1인당 2정을 미리 나눠 주고, 복용은 문자·방송으로 지시가 있을 때만 합니다. 12세 이상 130mg 1정, 약효는 24시간이며 반복 복용은 갑상선 기능 저하를 부를 수 있습니다.
6. 두 가지 시각
다중 방어로 충분하다는 쪽의 논거입니다. 자동정지, 4중 전원, 외부 주입 유로, 10m 방벽은 후쿠시마의 연쇄를 끊는 고리마다 하나씩 대응합니다. 2020년 태풍 정지도 원자로가 아닌 송전 설비 문제였고, 안전계통은 설계대로 작동했습니다.
부지 밀집이 문제라는 쪽의 논거입니다. 고리·새울 부지는 해체 중인 고리 1호기와 건설 중 호기까지 합치면 10기 안팎이 한곳에 있고, 반경 30km 인구는 수백만 명입니다. 후쿠시마도 한 부지 다수 호기가 동시에 사고를 냈는데, 국내 확률론적 안전성평가는 호기 단위가 기본이고 다수 호기 동시 사고를 다루는 방법론은 규제 요건으로 아직 제도화되지 않은 것으로 공개 자료에서 확인됩니다(2026년 9월 기준).
발전차도 호기당 1대가 갖춰진 뒤에야 계산이 맞습니다.
필자의 결론은 조심스럽습니다. 지진과 태풍 각각에 대한 설계 기준과 대비 상태는 2011년보다 뚜렷이 두터워졌고, 훈련은 복합재난을 기본 시나리오로 삼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동시에 여러 호기, 도로와 통신이 끊긴 채"라는 질문에는 설비보다 계산과 훈련의 답이 아직 덜 쌓여 있습니다. 태풍철에 원전 뉴스를 읽을 때 볼 것은 “멈췄다"는 제목이 아니라 무엇이 멈췄고 냉각 전원은 살아 있었는가입니다.
핵심 정리
- 복합재난은 자연재해가 원전 사고를 일으키면서 대응(전원·도로·통신·대피)까지 막는 상황이다. 후쿠시마는 지진→쓰나미→전원상실→냉각상실의 연쇄였다.
- 2020년 태풍 정지 6기는 소금기 섬락으로 송전 설비가 끊긴 것이었고, 밀폐형 설비 전환과 예방적 출력 감발 절차가 후속 조치였다. 내진 0.2g(핵심 계통 0.3g), 10m 방벽, 4중 전원, 외부 주입 유로가 현재 대비 상태다.
- 주민은 3~5km·20~30km 구역, 옥내대피(10mSv/2일)→소개(50mSv/1주) 순서, KI는 지시가 있을 때만 복용을 기억하면 된다.
참고 자료: 원자력안전위원회·산업통상자원부 태풍 영향 원전 정지 조사 결과(2020.9.25, ZDNet Korea·전기저널 보도),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속조치」, 뉴시스 「한수원 56개 대비책 연내 100% 완료」(2024.3), 원자력안전위원회 해남 지진 원전 영향 발표(2026.8.23, MBC 보도), 기상청 제24호 태풍 크로반 태풍정보(2026.9), 원자력안전위원회 2024년·2025년 국가방사능방재 연합훈련 보도자료(정책브리핑·KDI 경제정보센터), IAEA “Preparedness and Response for a Nuclear or Radiological Emergency Combined with Other Incidents or Emergencies” 칠레 과정(2026.5, Devdiscourse 보도), 한국수력원자력 이동형 발전차 배치 보도자료(2014.5), 아시아경제 고리 2호기 르포(2026.3.19), 울산광역시 갑상샘방호약품 복용방법 안내, 기장군 방사선비상 안내, World Nuclear Association “Fukushima Daiichi Accident”, 양산시 「방사선비상이란」 긴급 주민보호조치 방사선량 기준 안내